[일,하며]/어패럴뉴스

젊은 봉제강국, 짜오 베트남 - 1

Jackim 2009. 1. 26. 18:47

베트남 호치민편 1
 

 

 

해외르포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지난달 중순 베트남을 6년 만에 재방문하고 돌아왔다. 그동안의 변화상도 파악해 보고 최근 동향도 짚어보면서 역동적인 성장을 진행하고 있는 베트남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만나 한국 봉제인들의 꿋꿋함과 저돌적인 힘도 역시 이번 취재를 통해 충분히 느끼고 돌아왔다. 앞으로 수회에 걸쳐 베트남 현지의 생생한 이야기를 지면에 옮겨 본다. <편집자주>

젊은 나라,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대부분이 30대라는데 그만큼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나라가 베트남이다.

이번 방문은 근 6년 만에 다시 가는 것이다. 그동안 베트남은 고속성장이라는 단물을 계속 마셔왔다.
그 부작용으로 근래 들어 급격한 인플레가 경제 위기를 초래했고 아직도 그 여파가 곳곳에 남아 고통을 주고 있다. 30% 가까운 살인적인 물가상승은 서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다. 유가상승 임금인상이 이어지면서 봉제투자업체들도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인플레로 실생활이 어렵게 되자 임금인상 요구가 자연스럽게 분출되었고 스트라이크 발생율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 3년간 약 100% 가까운 실질임금 인상은 봉제투자 업체들의 주리를 튼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안개 낀 봉제환경과는 달리 막상 베트남에 도착하자 6년 전과는 완연히 다른 거리와 건물들, 그리고 그 분위기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베트남 특유의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 사이에 제법 큰 고층 건물들도 세워지고 있었고 헬멧을 착용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모습도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도로 사정도 좋아져 비포장 도로가 많이 줄어들었고 시가지를 오가는 사람들의 행색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경제 성장을 확실히 느끼게 하는 것으로는 여성들의 몸매를 꼽을 수 있다.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여성은 세계인들에게 매력을 심어주고 세련된 몸매로 군살 없는 아가씨들이 대부분이라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결과는 엉뚱하게도 베트남 여성들을 통통하게 만든게 아닌가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여전히 베트남 아가씨들은 밝고 활기차며 역동성을 불어넣어주는 매개체이다.
우기인 탓에 날씨는 그다지 덥지 않다. 비가 내리면 기온도 내려가 오후 늦은 시간에는 제법 신선함도 느낄 수 있다. 우기라 하더라도 한낮에는 무척 무더워 실내에 웬만한 냉방장치를 가동하지 않으면 땀이 계속 흘러내린다.
오토바이의 나라답게 베트남의 러시아워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다. 중심가로 가면 엄청난 수의 오토바이 군단을 만나게 되는데 대부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기자로서는 그 기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한번 차가 막히면 앞 뒤 옆의 오토바이들로 둘러싸여 꼼짝을 할 수 없고 오토바이 정지음과 매연으로 곤란을 느낄 때도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차를 타고 앞을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점이다.
워낙 아슬아슬하게 운전하는 기사가 많고 오토바이들과 접촉 일보직전까지 붙어서 가는 경우가 많아 가만있어도 다리에 힘이 자꾸 들어가고 헛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차창 밖을 보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고개를 돌려도 어느 새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의 운전자가 되어 헛브레이크를 밟고 있게 된다.
아무튼 베트남의 교통체계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으며 건널목을 건너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5박 6일간의 일정 동안 호치민시와 인근 지역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요즘 도로 사정은 많이 나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웬만한 길은 대부분 아스팔트 포장이 되었고 중심 거리 외에 외곽도로의 골목만이 일부 비포장이 남아 있었다.
짧은 일정이지만 많은 업체를 만난다는 목표로 시작한 2008년 하반기 베트남 현지 취재는 총 20여 봉제관련 업체를 만나 현지 상황과 최근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봉제 환경이 썩 좋은 편이 아니지만 이역만리에서 역경을 헤쳐 나가는 봉제인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용기를 얻기도 했다.
앞으로 수회에 걸쳐 베트남 봉제투자업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들의 일과 일상 속에 잠깐 들어가 보기로 한다.
베트남 도착 후 가장 먼저 방문한 업체는 특수 봉제전문업체인 Kangnam Manufacture Trading Service Co., Ltd.(이하 강남)였다.
감속기를 비롯해 모터 등 봉제관련 주변기기 부품 전문 업체인 (주)가나이엔지(대표: 강재선)가 베트남 호치민에 설립한 동사는 올해 11월이면 만 4년이 된다. 가나라는 한국 상호를 두고 ‘강남’이라는 상호를 채택하게 된 사연이 있다.
먼저 현지인들은 가나라는 발음을 하기가 힘들다. 결국 회사를 설립한 강사장과 기술을 제공한 남현우 이사의 성을 따서 강남이라는 상호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강남은 무역과 경영, 마케팅 역량을 가지고 있던 강사장과 기계, 기술 등 엔지니어링을 담당한 남이사가 합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현우 이사는 봉제 현장과 기계 제작 분야에 몸담았던 이력을 가지고 있어 현장관리와 기계 공무 분야 두루 해결사 역할을 완벽히 해내고 있다.
강남의 설립은 우연과 필연, 모두를 가지고 있다. 4년 전 남이사는 국내 봉제수출업체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수출오더 중에 해결하기 힘든 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을 처리해 달라는 것이었다.
약 4만장의 피코트 작업이 들어가는 제품인데 베트남 현지 공장에서는 도저히 장비도 없고 인력, 기술도 부족해 할 수 없었다는 것. 이런 제안을 받고 해결 방법을 고심하던 끝에 특수한 장비나 기기 분야의 다국적 정보를 많이 알고 있던 가나이엔지의 강사장을 찾아가게 된 것이다.
4만장 피코트 한 작업만 우선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곧바로 베트남 현지로 날아가 일반 주택을 임대해 작업장을 꾸렸다.
해외 각지에 비즈니스 파트너를 가지고 있던 강사장은 이곳 저곳 연락해 피코트 6대를 신속히 확보하고 작업장에 투입시켰다. 납기는 한달 보름. 6대 가지고는 작업량을 처리할 수 없어 이후 수대를 더 수입해 납기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갑자기 작업장을 마련해 생산 들어갔지만 쉽지는 않았다. 숙련공도 없고 특수 작업에 생소한 피코트 기계를 원활히 운영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작업을 끝내고 납품한 후 그대로 접고 한국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베트남에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고 강사장은 말한다.
“당시에 특종작업 대행업을 베트남에서 한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의류 경기가 침체하면서 뭔가 새롭고 특별한 패션 트렌드가 요구되었고 한창 특수봉제 오더가 늘어나기 시작할 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특수봉제는 일반봉제와 달리 자본이 많이 필요하고 리스크도 큰 사업입니다. 기계 자체가 일반 미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지만 보유 대수가 적정 수준이 되어야 캐파를 확보할 수 있어 초기 투자비가 많이 소요됩니다.
또한 특수한 작업이다보니 공정이 까다롭고 생산성도 떨어져 생각보다 부가가치가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각오해야 했지요.
이런 저런 고민으로 갈까 말까 하던 차에 마침 고시우라 작업을 해달라는 주문이 또 들어오더군요. 그리고 그 후에 스모크 오더가 들어오고 해서 결국 집 얻고 직원 뽑아 회사 만들게 된 것입니다.
‘맨땅에 헤딩식’으로 도전했는데 뭔들 못할까 하는 용기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남이사라는 든든한 기술자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강남이라는 특수봉제작업 전문 대행업체가 탄생하게 되었다. 당시 베트남에는 이 분야만을 전문을 하는 업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대부분 공장에서 특수 주문이 들어오면 기계를 구매해 직접 작업하거나 한국에서 특수작업을 해서 현지로 공수해가는 시스템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특수봉제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생긴 것은 현지 진출업체들에게 가뭄에 단비와 같았다.
4년여 동안 수많은 특수작업을 해오면서 기계도 늘고 인원도 많이 늘어났다. 삐꾸(패고딩)를 비롯해 스모크, 핀탁, 호시 등 특수 작업에 필요한 장비는 거의 모두 자체 보유하고 있다. 적정 캐파를 확보하기 위해 보유 대수도 한 기계 종류 당 수십대씩 가지고 있다. 이런 까닭에 어려움도 많다고 남이사는 말한다.
“특수봉제작업이라고 해서 일반 공장의 대형라인 작업과 따로 갈 수는 없습니다. 한 라인의 부분 공정이기 때문에 납기내에서 움직여주어야 합니다.
한 스타일당 작업이 길어야 15일 내에 끝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생산성도 낮고 작업도 까다로운 특수봉제를 일반봉제 일정과 맞춰내야 하기 때문에 저희는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현재 강남은 남이사가 기술과 현장 관리를 총괄하고 2명의 한국인 기술자들이 100여 명의 현장 직원을 관리하고 있다. 특수 봉제는 사고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모든 작업에 지시와 그에 따른 확인이 필수적이다.
한 순간 방심하면 엄청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현장은 항상 긴장감이 흐를 수 밖에 없다. 공정 관리는 아주 철저하게 이뤄지는 편이다.
강사장은 현장 근로자들의 표정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고 컨디션은 어떤지 무슨 내부 사정이 생기지는 않았는지를 파악해 최선을 다해 직원을 관리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결근이 발생하면 직접 방문해서 상태를 파악할 정도로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
“특수 봉제 작업은 일반 봉제와 다르게 숙련공이 필요합니다. 인력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본봉이면 본봉, 삼봉이면 삼봉 한 가지만 계속하는 일반 봉제와는 다르게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작업을 그것도 특수한 작업을 해야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력 관리, 기능인 관리가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특수봉제입니다.
또한 저희 공장은 모든 인력을 전천후 멀티플레이어로 키워내는 것을 지향합니다. 심지어 사무실내 인력들도 작업이 바쁠 경우에는 현장에 나가 생산에 투입됩니다.
경비원도 미싱을 다룰 줄 알아야 채용할 정도로 만능이 아니면 안된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주고 있습니다.”
강재선 사장은 글로벌 비즈니스를 지향하는 인물이다. 그는 특수봉제사업도 여러 나라에서 비즈니스를 쌓아왔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밝혔다.
“특수미싱은 가격도 고가지만 기기 자체를 확보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국내에서 특수기계나 특수 스모크 기기를 수십대 구하려고 한다면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럴 때 세계 각지의 지인들에게 정보를 요청하면 쉽게 쓸만한 기기를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습니다.
특종기기는 부품값도 비싸기 때문에 유지보수에도 많은 비용이 지출됩니다. 현재 공장에 호시 미싱이 수십대 가동되고 있는데 여기에 소요되는 바늘만 해도 항시 1천만 원 어치 이상을 확보해 놓고 작업중입니다.
저희 전체 장비에 꼭 필요한 소모성 부품만 하더라도 약 3억 원 가량을 재고로 확보해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부품비가 들어가는 이유는 한 종류의 장비에 50대 분 정도의 부품을 미리 확보해야만 생산에 차질을 빚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품 확보에도 자본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적시적지에서 공급받을 수 있도록 일본이나 대만,중국 홍콩 등 다양한 지역의 채널을 가동하여 원가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비절감을 하지 않으면 특종봉제는 경쟁력이 떨어져 채산성이 없습니다. 기계, 부품비 등 기본 경비와 유지보수비가 일반 재봉기에 비해 수배가 더 들어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강남 특수봉제는 인근은 물론이고 국내외 업체들에게는 웬만큼 알려졌다.
특수봉제 분야에서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입소문을 어떻게 알았는지 현지 로컬 업체뿐만 아니라 미국,유럽, 대만, 홍콩, 일본 업체들의 오더가 최근에는 전체생산량의 65%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 일반 봉제가 소비침체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의류에 다양한 효과를 넣어 새로운 맛을 살리기 위해 특수봉제 오더는 오히려 늘고 있는 추세다.
일부 공장에서는 자체적으로 스모크나 핀탁 장비를 보유하여 작업하기도 하지만 결국 고난이도 작업이나 난공정 오더는 동사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작업이야 공장 자체적으로 할 수 있어도 조금만 응용이 가미된 제품은 일반적인 기술과 기능 인력으로는 오히려 손실만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작업하는 오더들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웬만큼 공장은 안정되고 오더도 꾸준한 편이지만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는 사실 쉽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사람에게 배신당하거나 직원에게 횡령을 당해 월급 줄 돈이 없어 카드로 현금서비스 받아 메우기도 했다. 운영비가 없어 몇 백 원짜리 국수로 몇 달간을 버텼고 베트남 라면을 주식처럼 먹기도 했다.
차량 유지비가 없어 오토바이를 타고 거래처를 오가는 생활도 있었다. 한 때 이런 생활이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오기로 버티며 여기까지 왔다고 남이사는 회고한다.
“먼지 풀풀 나는 거리의 탁자위에서 베트남 국수를 먹으며 허기를 달랠 망정 한번 도전한 것 갈 때까지 가보자는 오기가 있었습니다. 독하게 마음먹고 현지인들과 몸으로 부대끼며 4년을 뒹군 결과가 지금의 강남입니다.
저는 아직 베트남어가 유창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직원들과 일 해오면서 이제는 눈빛과 몇 마디 말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습니다.
사실 4년 동안 ‘깨나이(이것이라는 의미인데 한국으로 치면 거시기 정도로 흔히 사용하는 말)’ 한 마디로 버텨왔습니다. 결국 몸뚱이 하나로 치열하게 부딪힌 것이지요.”
앞으로 강남은 베트남 공장을 교두보로 인근 지역으로 특수 봉제분야의 사업을 확장하려고 시도 중이다. 우선 태국 방콕 인근에 제 2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인데 우선 기술인력 확보와 인재 육성을 시행하고 있다. 특수 봉제 사업은 핵심 인력과 그 아래 또 다른 역할을 맡은 핵심 인재들이 움직여야 굴러가는 사업이다.
관리자급 인력이 확보되면 태국 현지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이다. 기계 설비와 기술은 이미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줄이고 좀 더 수월하게 오픈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고유한 분야를 개척하기 좋아한다는 강사장은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 분야에서 출혈경쟁, 아귀다툼하기 보다는 블루오션 분야를 개척하는 ‘프론티어 스피릿’을 가진 봉제인들이 많아질 때 새로운 도약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남들이 가지 않는 분야에 새로운 일가로 만든 그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내며 제2, 제3의 해외공장이 하루 빨리 가동되기를 기대해 본다.


EINS VINA CO., LTD

송탄공단에는 많은 한국업체가 입주해 있다. 대표적으로 세아상역을 비롯해 한솔, 풍국산업 등 국내의 내로라는 봉제투자업체들이 보란 듯이 그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곳이다.
물론 한국 기업들 뿐만 아니라 대만 홍콩 업체들도 상당수 이곳 송탄공업지구에 들어서 있어 국제적인 경쟁이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세아상역의 베트남 진출은 다른 업체들보다 늦었다. 대부분 대형업체들이 약 6~7년 전에 베트남에 진출했다면 동사는 이제 2년 7개월된 이곳에서는 신생업체라 할 수 있다. 2005년에 바로 인근에 있는 보텍을 인수하면서 부지와 1개 공장동을 매입하여 현지명 EINS VINA CO., LTD로 가동을 시작했다.
초창기인 2006년에는 12개 라인으로 운영하다가 베트남의 WTO 가입과 함께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라인을 증설해 현재는 70개 라인에 약 4,800명이 투입되어 있다. 현재 공장은 2개동에 3개 공장 체계를 갖추고 있는데 1공장 20개 라인, 2공장 22개 라인, 3공장 28개 라인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이 밖에 식당과 자재 창고동을 별도로 갖춘 대규모 시설을 운영 중이다.
문준용 상무의 안내로 공장과 전반적인 상황을 소개받을 수 있었는데 오랜 해외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는 에인스비나가 세아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초창기 진출 당시에는 쿼타가 없어 고전하기도 했지만 지금 베트남 공장은 세아상역이 기존 과테말라나 니콰라과의 주력 생산기지 이동에 따른 특수한 역할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그 역할에 충실한 편이다.
현재 동사의 세계 각지의 생산기지는 과테말라, 니콰라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청도, 사이판 등지에 진출해 있다. 이중 사이판 공장은 올해 3월 완전히 철수하고 이곳에 투입되던 고가 오더가 대부분 베트남으로 전환되었다.
사이판 공장은 대부분 조선족과 한족 등 중국으로 인력송출 받아 가동했으나 인건비 규정이 바뀌면서 최소 임금이 상승하는 등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맞아 공장을 폐쇄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사이판 공장을 철수할 때도 세아는 오랫동안 유지시켜 왔으나 더 이상 실효성이 없어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옮긴 것이다.
사이판에서 진행하던 고가 FOB 위주의 오더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사실 세계 어느 공장도 없었다.
오직 베트남 공장만이 유일하게 패션어블한 고급 오더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해외공장 투자의 변환기를 맞아 베트남 투자는 시의적절했다는 내부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베트남 공장의 매출은 약 8,000만불 이상으로 전년 대비 100% 가량 실적이 증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오더가 다품종 소량 제품 위주로 투입되고 있으며 생산성은 아직까지 중남미 메인 공장에 비해 약 80% 수준이지만 워낙 손재주가 좋은 민족성 탓에 점차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문상무는 베트남의 인플레로 인한 경제난이 현지 당국의 세련되지 못한 경제정책에 기인한 바 크지만 앞으로는 점차적으로 회복해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봉제투자 역시 중국과 사이판, 중남미 등이 환경변화로 무너지면서 베트남으로 급속히 몰려들었고 그 결과 현지 인건비 상승, 스트라이크 발생 등의 부작용도 초래했다. 그러나 세계 유가가 안정을 찾고 현지 물가가 제자리를 찾아가면 이런 부작용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가는 임금인상을 부르고 나아가 스트라이크 발생 빈도를 높인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초창기 진출당시인 2006년에 비해 현재 실질 임금은 거의 100% 인상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2년 사이에는 60~70% 가까이 상승해 해외투자 업체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결과 임금 인상이나 복지 증진을 요구하는 파업이 심해졌지만 베트남 정부당국은 거의 손을 쓰지 않습니다. 공기업이나 국영기업에서는 한건의 파업도 발생하지 않지만 해외투자기업에서는 수시로 발생하는 것이 최근 이곳의 현실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에서 발생한 파업은 대부분 해외투자업체이며 대략 400여 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싶어 공단에 입주한 인근 동종업체 법인장들과 교류를 가져본 결과 그들 역시 정부의 인식이나 노조의 배후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지인들의 경우 절대로 공장내 자생 조직에 의해서 파업을 하는 것은 힘들다는 것이 저나 교류하는 법인장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아마 배후에 스트라이크를 부추기는 조직이 반드시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부 관료들조차 파업 발생을 신고하면 인민에게 좀 베풀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외자기업들은 고스란히 앉아서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문상무는 지난해부터 스트라이크 빈도가 높아지면서 인근 업체 경영자 모임을 자주 가져 정보를 교류하고 문제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런 것이 필요한 것은 대부분 스트라이크가 한 업체에서 발생하여 인근 지역으로 유행병처럼 번지기 때문이다. 결국 스트라이크 문제는 발생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근 지역 모든 업체들의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스트라이크가 발생하면 시발 업체의 타협안이 그대로 인근 업체들의 타협안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대책회의를 마련해서 스트라이크 발생에 적극 대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법인장들끼리는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전화통화나 문자메시지, 메일을 통해 상호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