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테이큰
아버지의 '딜레마'
'아이언 맨'과 '스피드 레이서'라는 블록버스터 영화들 사이에서
꾸준히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있는 영화 한 편이 있다. 리암 니슨이라는
미국의 중년 남자 배우가 주연을 맡은 '테이큰'이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전직 정부요원이었던 리암 니슨이 파리 여행 중 인신매매 단에 납치된 딸을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상투적인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 불과할 이 영화에 재미있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영화 속 리암 니슨은 이혼남이다. 전처가 재벌급의 새 남편과 재혼한 것으로
볼 때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더구나 10대의
딸에게도 고리타분한 아버지로 비쳐질 뿐 존경을 얻지는 못한다. 하지만 딸이
위기를 맞게 되자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과거 특수 요원으로 활동했던 자신의
노하우를 사용해 프랑스 파리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기필코 딸을 구출해 오는 것이다.
부상당한 몸으로 딸과 함께 공항으로 입국하는 그에게 영화 내내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던 전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단숨에 가족의 천덕꾸러기에서 영웅으로
자리바꿈을 하는 순간이다.
몇 몇 평론가들은 영화 '테이큰'이 중년 남성의 로망을 담고 있다고 분석한다.
젊은날을 직장에 바치고 나이 들었지만 가족을 떠나있던 가장에게 돌아오는
반응이란 차가운 시선이 전부이다. 아내는 더 이상 사랑스러운 연인이길 거부하고
자녀들은 뒤늦은 아버지의 존재를 버거워한다. 이런 현실적인 이해 속에서
'테이큰'은 가장 영화적인 전복을 시도한다. 가족에게 닥친 최대의 위기 상황을
혼자 힘으로 해결하고 다시금 남편과 아버지의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일 뿐이지만, 영화가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중년 남성들이 현재 어떤 딜레마에 빠져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거론되던 소위 중년의
위기가 미국 사회에서도 똑같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동안 사오정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돌아다녔다. 직장에
젊음을 바쳤지만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정리 해고되는 중년 남성이 늘어났던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 경제력을 잃은 가장들은 가족으로부터도 정리 해고되는
불운을 맛봐야만 했다. 하지만 누구도 이들에게 충분한 배려나 따뜻한 위로를
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작년에 개봉했던 '다이하드 4.0'과 최근까지도 상영되고 있는 '테이큰'을
거론하는 것은 미국의 영화계가 위기를 맞고 있는 중년의 남성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존경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으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패배자
라고 단정지어졌던 중년 남성들의 액션 활극은 잠시나마 그들에게 작지만 행복한
위안을 건넸을 것이다. 물론 고작 두 편의 영화를 통한 과잉 해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극장이라는 곳이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난 쉼터의 공간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두 편의 영화가 주는 의미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울러 아쉽게 느껴지는 점은
중년의 영웅이 등장하는 우리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극장에서조차
허무맹랑할지언정 영화의 주인공에게 한껏 감정이입을 하고 2시간 동안이나마
인생의 주인공으로 다시 한 번 등극할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최근 개봉을 앞둔 영화 중에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 19년 만에 네 번째 시리즈를
선보이는 해리슨 포드 주연의 '인디아나 존스'이다. 중년을 넘어 환갑의 나이에도
다시 액션 영웅으로 돌아오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땅의 노땅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진다.
김태훈
팝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