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하며]/경영리즘들

도전과 성공의 나날들[3]

Jackim 2008. 5. 3. 14:15


끝없는 도전 과 용기
▣ 차 례
제1부 꿈을 키우던 시절
제2부 웰치식 경영의 시작
제3부 도전과 성공의 나날들
제4부 끝없는 열정의 승부
제5부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제3부 도전과 성공의 나날들
키더에서의 뼈아픈 실패
"맙소사! 잭, 그 다음엔 또 뭘 사들일 거죠? 설마 맥도널드를 인수하지는 않겠죠?" 골프 경기 
도중 누군가가 던진 말이다. RCA 인수 계획을 발표한 지 4개월 만에 나는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오래된 투자은행 가운데 하나인 키더 피바디의 인수를 마무리지었다. 비록 농담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GE의 키더 인수 결정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GE의 이사들 가운데에도 세 사람 정도가 지나칠 만큼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시티은행의 
회장인 월터 리스턴도 거들었다. "지금까지 우리 회사는 금속장치들을 만들어왔어요. 
그런데 이번에 당신이 구입하려고 하는 것들은 모두 나무로 된 가구들이군요."
하지만 1986년 4월 캔자스시티에서 있었던 이사회에서 나는 이번 인수에 대한 타당성을 
강력하게 주장해 만장일치의 승인을 얻어 냈다. 하지만 그 일은 내가 얼마나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였다. 나는 인수 합병에 임하는 순간이 되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언제나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키더를 인수한 지 8개월이 지났을 때, 나는 GE가 월스트리트를 강타한 충격적인 스캔들 
속으로 자진해서 걸어 들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키더의 유능한 투자은행가인 마티 
지겔이 내부자 거래를 도와 주는 조건으로 묵직한 현금 가방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또한 그는 키더가 골드만 삭스의 리처드 프리먼으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거래를 수행했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비록 그 부당 거래가 발생한 시점이 GE가 키더를 
인수하기 이전이긴 하지만 새로운 소유주로서 우리가 떠맡아야 할 법률적인 책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
키더 내의 문화도 문제가 있었다. 키더의 직원들은 누군가에게 1,000만 달러짜리 수표를 
받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쪽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1,200만 달러를 받았던데요?" 
결국 우리가 사들인 것이 나무로 된 가구들뿐이라는 리스턴의 경고가 들어맞은 셈이었다. 
나는 키더 내에 다시금 신뢰감을 회복시킬 수 있을 만한 인물을 찾아야 했고 결국 일리노이 
공구의 회장이었던 캐스카트가 키더를 이끌도록 했다. 그러나 캐스카트가 키더를 꾸려나가던 
시기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캐스카트는 회사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통제 체계를 
점차 개선해 나가고 몇몇 유능한 인재들도 채용했다. 그러나 그가 회장으로 일하기 시작한 
지 5개월도 되지 않은 1987년 10월에 주식 시장이 붕괴되었다. 그 해에 키더는 7,2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5,000명의 직원 가운데 1,000명이 해고됐다.
키더와 GE의 문화적 차이는 너무나 컸다. 이사회에서 제시되었던 반대 의견에 나는 귀를 
기울여야 했던 것이다. 나는 GE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하루라도 빨리 키더에서 
손을 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쉴새없이 고민했다. 그 후 키더의 수익성이 높아졌음에도 
나의 그러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키더를 매각하기 위한 협상은 계속 실패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사건이 터졌다. 1994년 4월 14일, 우리 트레이더 가운데 한 사람의 
계좌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3억 5,000만 달러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끙끙 앓았다. 3억 5,000달러라니!
그 사건은 내 생애 최악의 악몽이었다.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그 많은 돈이 사라질 수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나중에야 우리는 그 범인이 키더의 시스템
상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회사에 커다란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해 스스로를 힐책했다. 키더의 직원들에게 GE가 낯설게 보였던 것만큼이나 키더는 우리의 
문화와는 거리가 먼 이질적인 문화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감과 자만심 사이에는 단지 
종이 한 장 만큼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시기 동안 나는 오만에 가득 차 있었고, 그로 인해 
결코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은 셈이었다.
싸울 때와 물러설 때
나는 진실과 거짓, 선과 악, 그리고 정직하고 성실한 공무원에서부터 정치적이고 이기적인 
고위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여러 면들을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 왔다. 나는 정부가 
관계된 크고 작은 부당한 소송들을 많이 봐왔는데 내 자신이 그런 위기를 처음 맞닥뜨린 것은 
1992년이었다. 11월에 해고된 GE 플라스틱 사업부의 부사장 에드 러셀이 우리가 남아프리카의
 드 비어스와 담합해 다이아몬드 가격을 결정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한 것이다. 그는 상사인 
글렌 하이너가 독점적인 가격 담합을 위해 드 비어스측의 사람을 만난 것에 자신이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에 해고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러셀의 이야기가 사실 무근임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GE 플라스틱 사업부의 책임자인 
글렌 하이너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러셀이 해고된 정확한 이유는 업무 실적이 
저조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자체 조사 결과들을 법무성에 제출하고, 러셀의 주장들 가운데 
열두 가지의 심각한 허위 진술에 대한 내용을 담은 백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법무차관은 우리에게 가격 담합 혐의 기소를 취하하고 싶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벌금을 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잘못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조건 싸워야만 했다.
8개월 후인 10월 25일 연방 법원에서 첫 재판이 열렸다. 그러나 우리는 증거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게끔 정부의 소송을 무효로 만들어 버리는 쾌거를 올렸다. 조지 스미스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가격 담합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는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론의 악평들을 감수하며 3년간의 싸움을 한
 끝에 러셀의 소송에서 완벽하게 승리했다. 우리는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투쟁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CEO로 일한 20년을 포함해 지난 25년간 내가 다뤄야 했던 여러 사건들 가운데 가장 커다란 
좌절감을 안겨준 사건은 바로 PCB 유출사건이다. PCB는 1977년 이전부터 전기 제품의 절연체로 
사용되어 왔다. 2000년 12월에 미국환경보호국(EPA)이 발표한 허드슨 강을 정화하기 위한 
대규모 준설 계획은 PCB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사건은 큰 목소리와 극단적 견해 때문에 
건전한 과학과 상식이 곤경에 빠지게 된 전형적인 예였다. 몇 년에 걸쳐 논쟁이 계속되면서 
EPA의 초점이 PCB에서 좀더 근본적인 개혁 운동으로 변해갔다.
극단주의자들은 기업의 기본적인 역할에 도전하기 위해 PCB와 같은 문제들을 걸고 넘어졌다. 
청문회에서 의장은 허드슨 강의 PCB 오염이 '기업의 악폐'와 '당국의 관리 소홀'의 결과라는 
잠정적인 판정을 내렸다. 우리는 이미 PCB의 방출 사실은 인정한 상태였지만 그 방출량이 
결코 법적 기준을 초과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우리는 
하천정화기금으로 350만 달러를 출연하는 한편, PCB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더 이상 PCB를 사용하지 않는 데에도 동의했다. 「뉴욕 타임스」는 헤드라인 기사에 
PCB 유출에 대한 GE와 주 정부 간의 협정이 "공동과실에 대한 협정으로서 매우 효과적인 
선례"라고 주장한 바 있는 소파에르의 말을 인용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나는 PCB가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
하는지 알고 싶었고, GE의 근로자들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지 여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싶었다. 그래서 석면에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셀리코프 
박사로 하여금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하도록 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30년간 
PCB에 노출된 근로자들 가운데 암이나 다른 심각한 부작용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 
1982년 국립산업안전관리공단의 알렉산더 스미스가 인체에 치명적이라고 발표한 이후에도 
사실 PCB가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의 발생 요인이라는 사례는 없었다. 하버드 대학의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PCB는 중독성이 거의 없다고 발표하여 자신의 이전 보고서 
내용을 수정하기까지 했다.
기업에서 도덕성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 도덕성은 어떤 조직에서든 가장 중요한 제1의 
가치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단지 회사의 규정이나 법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우리는 PCB가 공장 근로자들이나 지역 주민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관되게 
믿어왔다. 우리는 생태계를 가장 잘 보전할 수 있는 방법으로 허드슨 강을 정화하는 데에 
첨단 과학을 이용하기 위해 수억 달러의 비용을 지불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투자를 계속할 것이다.
정부가 하는 여러 가지 활동에 대한 내 입장은 냉소적이지는 않더라도 회의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옳은 일을 위해 싸울 수 있는 훌륭한 도덕성과 충분한 자원은 갖고 있는 기업
만이 정부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운 좋게도 우리는 두 가지 모두를 갖고 있다.

'[쉼,하며] > 경영리즘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 다른 시작을 위해[5]  (0) 2008.05.03
끝없는 열정의 승부[4]  (0) 2008.05.03
웰치식 경영의 시작[2]  (0) 2008.05.03
사회적 기업과 경영능력  (0) 2008.05.03
끝없는 도전 과 용기 잭 웰치[1]  (0) 2008.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