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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하나님을 뜻하는 여러 이름의 유래

Jackim 2012. 5. 20. 18:23

[네티즌을 위한 알기 쉬운 기독교] (13)하나님을 뜻하는 여러 이름의 유래

[국민일보]|2011-12-02|33면 |07판 |문화 |기획,연재 |2872자

 

■ 야훼와 여호와는 같은 이름입니까, 다른 이름입니까
■ 여호와 하나님이라 할 때 여호와는 무슨 뜻입니까
■ 엘로힘을 외계인으로 믿는 종교도 있던데 엘로힘이라는 신은 어떤 신입니까

 

 


구약성경에 신의 이름이 직접 언급될 때는 주로 야훼(Yhwh)와 엘로힘(Elohim)이 사용되는데, 야훼가 약 6700회, 엘로힘이 약 2500회 등장합니다. 성서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출애굽 사건 이전까지 고대사회에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엘(El)이라는 최고신을 섬기고 있었으며 그 신의 이름이 ‘엘로힘’으로 발전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성경에는 ‘엘 샤다이’(El Shaddai·전능하신 하나님, 창 17:1, 출 6:3), ‘엘 엘리욘’(El Elyon·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창 14:19), ‘엘 로이’(El Roi·감찰하시는 하나님, 창 16:13) 등 ‘엘’에 대한 다양한 호칭이 나옵니다. 이처럼 엘로힘은 야훼라는 신명(神名)이 등장하기 전까지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던 신의 이름입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이 엘 신을 폐기하고 야훼 신으로 대체한 것이 아니라 엘이 야훼 안으로 통전적으로 교체되었던 것입니다.

야훼라는 이름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Elohim)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스스로 있는 자(`ehyeh)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신 조상의 하나님께 이름이 무엇인지 묻자 하나님은 그에게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말로는 “나는 나다”(공동번역)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개역) “나는 곧 나다”(표준새번역)로 번역되고, 영어로는 “I am who I am” 또는 “I will be who I will be”로 번역됩니다.

우리말의 ‘야훼’ 또는 ‘여호와’로 표기되는 이름은 본래 ‘에흐예’(`ehyeh)로 발음되는 히브리어인데, 원래 히브리어에는 모음이 없습니다. 자음만 붙여 써놓으면 모음은 사람들이 알아서 붙여 발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자음 네 글자를 영어 알파벳으로 표기하면 Y(위) H(ㅎ) W(우) H(ㅎ)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이 이름에 맞는 모음을 붙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매우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고민하던 중에 ‘주님’ 또는 ‘주인’이라는 뜻을 지닌 ‘아도나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냈습니다. 이 단어 역시 네 글자로 되어 있는데, 거기서 모음만 따오면 아, 오, 아, 이가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네 개의 자음에다 아도나이에서 따온 네 개의 모음을 붙여 읽다 보니 ‘야훼’ 또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온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야훼’와 ‘여호와’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신의 이름이 아니라 발음이 다른 두 가지 표기방식 때문에 생겨난 이름들입니다.

구약학자들의 해석에 의하면 ‘야훼’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동사 어근 ‘하야’(hyh/HaYaH)에서 파생되었으며, 그 동사의 본래적 의미는 떨어지다(fall), 생기다(befall), 되다(become), 생존하다(be, exist) 등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히브리어 문법구조로 봐서 야훼라는 이름은 미완료 동사형이라는 것입니다. 즉 본질 개념이 아니라 현상적, 기능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야훼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사역과 역할의 관점에서 해석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소개하실 때 자주 사용하셨던 말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하나님이다”에서 잘 드러납니다. 즉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살아 활동하시는 분이며 약한 자를 변호하시고 억눌린 자를 해방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한편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나는 나다”라고 하신 대답은 사실상 이름 주시기를 거부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고대 근동지역의 모든 신들은 그 이름과 모양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바알신, 아세라신, 몰록신, 다곤신, 그모스신 등 모든 신들은 한결같이 각각의 이름과 모양을 갖고 있었으며 주로 짐승의 형상이었다고 합니다. 모세는 그런 선험적(先驗的) 신관(神觀)을 가지고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것입니다.

한국의 무속에서는 무당이 신내림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모시는 신의 이름을 받게 되고, 환상 중에 그 신의 모양도 보고, 그 신의 모양을 그린 무신도(巫神圖)를 신당에 걸어둡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다른 모든 종교의 신과 달리 이름도 모양도 없는 분입니다. 거룩하신 초월자 하나님을 어떤 모양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결국 그분을 피조물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형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엄명하셨습니다.

인간이 자기가 믿는 신의 이름과 모양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의 인식능력과 지식범주 안에서 신을 파악하고자 함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신은 인간의 지식범주와 인식능력을 초월할 수 없는 하찮은 신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거부하신 것입니다. 노자의 도덕경 1장에 나오는 “이름할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名可名 非常名)”라는 말처럼, 유일무이한 절대자에게 무슨 이름이 필요하겠습니까?
이처럼 성서를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은 이름이 없고, 모양도 없고, 신화가 없고, 성(性)이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편의상 그분을 ‘야훼’ 또는 ‘여호와’라고 불렀으며, 포로 후기부터는 야훼 대신 ‘주님(아도나이)’으로 불렀습니다. 이처럼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는 그 초월자 하나님을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강영선 한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