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교회에서 행하는 고해성사에는 어떤 성서적 근거가 있습니까? ■ 가톨릭에서는 신부가 신도의 죄를 사해준다는데, 개신교 목사는 왜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고해성사(告解聖事)란 가톨릭교회의 일곱 가지 성례전(세례, 성찬, 견진, 고백, 신품, 혼인, 종부) 중 하나로서 신도가 범한 죄를 참회할 때 사제가 그리스도의 권한을 대신해서 그 죄를 사해 주는 성사를 말하며, ‘고백성사’라고도 합니다. 고해성사의 성서적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 20:22∼23)고 하신 말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받기 위해 먼저 자기 죄를 하나님께 고백해야 했으며 이러한 죄의 고백을 통해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이러한 죄 사함(赦罪)이 곧 구원의 전제조건이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죄의 고백에는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믿음이 수반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곧 죄의 용서와 구원을 의미했습니다(사 38:17, 시 32:1∼7).
신약성서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회개의 요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여기서 회개란 마음의 깊은 변화와 동시에 실제 생활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세례자 요한의 설교와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는 이러한 회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막 1:4, 15). 더 나아가서 신약성서에서 회개는 성령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과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생명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롬 5:21). 또한 초대 기독교 공동체는 성도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연대해 살면서도 인간적 나약함으로 인해 죄와 악에 노출되어 살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끊임없이 악과 맞설 것과 회개를 통해 성결한 생활을 할 필요가 있음을 사도들은 역설했습니다(요일 1:5∼10).
이러한 성서적 근거에 의해 가톨릭교회는 고해성사를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것이며,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그리스도로부터 사도들을 거쳐 사제들에게 계승되었다고 해석합니다.
고해성사는 7세기경 켈트지역(아일랜드)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차 확산되었으며 1215년 라테란공의회에서 입법화되었다고 합니다. 고해성사는 죄로 인한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생명력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과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이 고해성사를 더 이상 교회의 성례전으로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기존 교회의 일곱 가지 성례전 중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을 교회의 성례전으로 채택했습니다. 그렇게 결정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세례와 성찬만이 확실한 성서적 근거를 지니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친히 세례를 받으셨고, 또한 제자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에게 성찬을 베풀었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눅 22:19)고 당부하셨습니다. 이 확실한 성서적 근거에 의해 개신교에서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을 교회의 성례전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개신교회가 고해성사를 성례전으로 채택하지 않은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평신도 신학 때문입니다. 평신도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택된 백성으로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그들은 세례와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시간과 물질을 바쳐 교회를 섬기며, 성직자와 달리 일상적인 사회생활 속에서 복음정신을 구현하며, 그리스도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완수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러한 평신도의 선교활동이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얼마나 자발적이었으며 얼마나 풍부한 효과를 내었는지 성경이 명백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행 7:54∼60, 11:19∼21, 롬 16:1∼16, 빌 4:3).
특히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나오는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라는 말씀은 평신도 신학의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그리스도와 연대한 모든 백성이 선민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소유라는 이 말씀에 근거해 개신교에서는 구약시대와 달리 복음시대에는 누구나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사제를 통하지 않고도 하나님께 직접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개신교가 고해성사를 성례전으로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사죄(赦罪)의 기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예배자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성결해야 하기 때문에 개회예배 부분에서 먼저 죄를 고백하고 용서의 선언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분의 영향으로 대부분 개신교는 ‘죄의 고백과 용서’라는 순서를 개회예배 부분에 넣습니다. 이 순서에서 예배자들은 각자 지난 한 주간 동안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목사가 선포하는 용서의 선언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공동체적 고해성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사죄의 차원이 있습니다. 개신교인들 역시 때로는 개인적으로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하고 죄를 고백하고 사죄의 기도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개신교의 목사들 역시 개인적인 사죄의 기도를 드리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목회적, 치유상담적 차원이지 성례전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점입니다.
강영선 한신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