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하며]/예쁜좋은글

그리움도 때로는

Jackim 2008. 8. 8. 01:25


    그리움도 때로는
     

    바람 한 줄기 불어주지 않는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경보나 주의보가 내렸다고 한다.

    오후 다섯 시가 넘었지만
    찜통 속 같은 8월 초의 더위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는다.

    그악스런 매미 울음은
    이미 소리가 아니라
    눅눅한 열기로 변해 버렸다.
    주전자 뚜껑을 달그락거리면서
    쌔액쌔액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같은.

     

    그런데
    곤충의 울음마저 습도와 온도로 체감되는
    그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도
    나는 더운 줄을 모르겠다.
    눅눅한 열기 속을 떠도는 포도향 때문일까?

    나는
    후각만 남은 짐승처럼 킁킁거린다.
    포도가 익으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며칠 전에 지인의 포도밭에 갔었다.
    아직도 익지 않은 시큼한 포도를 입에 넣고
    얼굴 찡그리며 떠 오르는 생각들..

     

    아득하여 간절하고,
    간절하기에 뜨겁게 타오르며,
    그래서 목마르고,
    목 마르다가 이내 서늘하게 슬퍼지던 그리움.
    그러나 그리움도
    드물게는 따뜻한 행복이 되기도 한다.

    포도밭은 오래된 마을에  자리잡았는데,
    주변엔 이미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곧 포도밭 앞으로 큰 도로가 나게 된단다.
    어쩌면 이 곳도 머지 않아 사라질지 모른다.
    이곳만 남기고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주변의 포도밭들처럼.

    좀더 시간이 흘러,
    내가 또
    누군가의 포도밭을 찾게 되는 일이라도 있다면
    지금 이 시간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따뜻하게 행복하리라.

    그리움도 때로는 따뜻한 행복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