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하며]/생각하는글

[영화]쉘부르의 우산(1964)

Jackim 2008. 7. 9. 00:45


[17] 쉘부르의 우산(1964)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당신 없인 살 수 없어"
도저히 숨길 수도, 무엇으로 감출 수도 없다. 열일곱의 쥬느비에브(까뜨린느 드뇌브)와 
스무 살의 기이(니노 까스텔뉘보). 사랑의 열정에 달뜬 그들에게 삶은 환희요 세상은 
낙원이다. 기름 냄새도 향수 같고, 손끝을 파고드는 바늘쯤 아무렇지도 않다. 
둘이 함께 그리는 미래 또한 거침없다. 아마도 천사처럼 예쁠 첫째 딸 이름은 프랑소아즈. 
하루 종일 기름 냄새에 찌들겠지만, 사랑할 테니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하늘만큼 땅 만큼.
▲ "당신 없인 살 수 없어, 당신이 가면 죽을 거야. 내 사랑, 떠나지 말아." 
2년 아니라 단 2달도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여자는 눈물 흘린다. 
"우린 다시 만날 거고 사랑은 더 커질 거야. 생명이 다할 때까지 당신을 사랑할거야." 
확신에 찬 남자에게 그깟 2년쯤은 아무 것도 아닐 것만 같다. 그렇게 "두려워/사랑해"의 
이중창이 울려 퍼진다. 자크 드미 감독의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1964)에서 
쥬느비에브에게 엄마 에믈리 부인(앤 베논)은 마치 모녀가 팔고 있는 우산 끝처럼 
뾰족하기만 하다. 사랑하니 결혼하고 싶은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며, 소박하게 살 테니 
행복할 수 있다는 어린 딸에게 엄마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타이른다. 
"얘야, 넌 아직 어린애, 아무 것도 모른단다." "사랑이라 믿겠지만 사랑은 그런 게 아니야."
그런 엄마 대신 기이를 선택하겠노라고 선언하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있어 행복하니 당장이라도 결혼하자던 다짐이 2년의 군복무 뒤로 
미루어졌을 때, 어린 쥬느비에브는 한 없이 약해진다. 헤어짐으로 자신들의 사랑이 
더 단단해질 거라고 기이는 확신하건만, 홀로된다는 건 너무나 두렵다. 2년 동안의 
기다림이라니, 아니, 못할 것만 같다….
# 프랑소아와 프랑소아즈
결국 엄마가 옳았다. "돌아올 때까지 사랑한다면 그 때 보자꾸나"던 말은 어김없었다. 
그이 없인 금방이라도, 꼭 죽을 것 같았지만, 사랑 때문에 죽는 건 정말이지 영화에만 
있는 일이었다. 이별도 잔인하고 엄마의 말도 잔인하지만, 더 잔인한 건 그래도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몸이고 마음이었다. 평생 기다릴 거라는 약속도, 생명이 다할 때까지 당신만을 
사랑하겠노라는 약속도 피차 지키지 못했지만, 프랑소아라는 아들을 둔 아버지, 
프랑소아즈라는 딸을 둔 어머니로 각자 그런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아무런 준비도 없이 홀로 남겨져야 했던 기이에게 그 시간들은 쉽지 않았다. 
군대에서 맞은 유탄으로 다리를 절게 된 그는 오매불망 기다렸던 쥬느비에브의 빈자리 
때문에 직격탄을 맞은 것처럼 휘청거린다. 그러던 그가 심각하게 구조요청을 한 건 
쥬느비에브 대신 예전 모습 그대로 기다린 마들렌(엘렌 파너)마저 그의 곁을 떠나려고 
했을 때였다. 그리고 다시 말끔해진 모습으로 청혼하면서 그는 마들렌에게 말했었다. 
"쥬느비에브 생각은 안해. 이제 완전히 잊었어. 당신과 행복하고 싶어. 한 여인과 함께 
선택할 삶 안에서 행복하고 싶어"
▲ 느닷없다지만 언제고 한 번은 찾아올 줄 알았던 순간, 함박눈 펑펑 내리는 주유소의 
3각 구도-여자는 남자를 보고, 남자는 아이를 본다. 아무 것도 모른 채 혼자 놀고 있는 
아이는 남자를 꼭 닮았단다. 아이를 보고 싶냐는 여자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빠르고 단호하게. 그리고 펑펑 눈 내리던 크리스마스 밤의 주유소. 언제고 한 번은 닥치리라
 예감하고 내심 두려워했던 그 순간을 두 사람 모두 훌륭하게 버텨낸다. 이번에는 
쥬느비에브도 남편에 대한 의무를 배신하지 않는다. 기이 또한 마들렌에게 청혼하던 때의 
다짐을 어김없이 실천한다. 함께 했던 그 밤 이후 6년 만에 만난 쥬느비에브가 자신을 꼭 
닮은 딸아이 보기를 권했을 때, 그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하는 것이다. "기름 다 넣었나봐." 
그리고 자신을 꼭 닮았다는 딸아이가 쥬느비에브와 함께 사라져간 반대 방향으로 환하게 
웃으며 힘차게 뛰어간다. 장난감 가게에 들렀던 아내 마들렌에게 키스하고 아들 
프랑소아즈와 눈싸움을 하며 아마 그는 필름을 되돌리듯, 짧았던 해후를 수없이 
곱씹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잘 사는 거지?" 그녀가 마지막으로 
물었을 때, 천천히 고개를 들면서 또렷하게, "그럼, 아주 좋아" 대답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그리고는 또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고개를 주억거릴 것이다. 그렇지, 
이렇게 사는 게 좋은 거지, 이런 게 사는 거지…. 아마 이게 사랑인 거지…. 
/ 박인영·영화 칼럼니스트
#이 영화는
■ 까뜨린느 드뇌브 = 오드리 헵번이 '로마의 휴일'로 그러했듯, 1943년생으로 당시
 21살이었던 까뜨린느 드뇌브 또한 단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당대의 바람둥이 감독 로제 바딤의 아이를 낳고 찍은 '쉘부르의 우산'은, 까뜨린느 드뇌브 
없이는 아무 것도 상상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영화였다. 
< P > 1965년 '혐오'를 찍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표현처럼 
"순진한 처녀 같지만 매우 섹시"한 매력으로 스크린에서 시들지 않는 광채를 발휘해 온 
그녀는 '어둠 속의 댄서'(2000)'8명의 여인들'(2002)에서 직접 노래 부르는 젊은 
모습으로, 2006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의 관록 있는 모습으로,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가장 프랑스적인 분위기의 여배우로서.
■ 이토록이나 아름답고 씁쓸한 뮤지컬 = '쉘부르의 우산'은 프랑스 최초의 컬러 뮤지컬 
영화로서, '뮤지컬과 다른 차원의 독창적 무대 예술을 과시한 실험적 샹송 오페레타'로서 
음악 감독 미셸 르그랑의 명성과 함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배우들이 모든 
대사를 노래로 불러 얼핏 낯설기도 한 '쉘부르의 우산'이 반세기의 시간을 지나 여전히 
사랑받는 것은 사랑의 판타지와 어두운 그늘을 동시에 표현했다는 점에 있을 것 같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분홍색 등 원색의 공간 세팅과 영화 내내 흐르는 감미로운 음악은 
낭만적 사랑의 신화에 복무하는 뮤지컬 장르의 관성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굳건
했던 사랑의 맹세가 속절없이 스러져 버린 뒤를 담담하게 관찰하는 엔딩 장면의 카메라는, 
그 어떤 리얼리즘 영화도 쉽게 체현해내지 못하는 스산하기만 한 삶의 모습을 담는다.
 '스캣의 여왕'으로 불리는 다니엘 리까리의 음색으로도, 'I'll wait for you'로도 잘 알려져 
있는 주제곡은 가슴을 훑어 내리며 긴 여운을 남긴다. '군대 간 동안 고무신 바꿔 신은 여친' 
설정에 익숙한 한국관객들에겐 남다른 느낌을 주기도.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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