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도전 과 용기
▣ 저 자 잭 웰치
1935년 매사추세츠 피바디에서 태어나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화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0년에 GE에 입사하여 처음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수년 동안 자신만의 독특한
사업 및 경영 방식으로 승진을 거듭한 그는 레그 존스 회장에게 발탁되어 1981년에
마침내 GE의 최연소 회장이 되었다. 이때부터 GE는 전혀 새로운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그는 각 사업부를 대상으로 '고쳐라, 매각하라, 아니면 폐쇄하라.'라는
전략을 통해 10만 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하면서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리스트럭처링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6시그마, 세계화, e비즈니스
등의 전략으로 GE를 혁신하여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 Short Summary
GE의 CEO로 취임한 이후 GE의 시가총액을 40배 가까이 키웠고, 5년간 11만 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한 잭 웰치는 언론으로부터 '중성자탄 잭'으로 불리는 등 찬사와 비난이
엇갈린 관심을 받아왔다. 그런 잭 웰치가 직접 썼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은 부제처럼 기업경영이라는 끝없는 도전에 관해 쓴 흥미롭고 열정적인 책이다.
관료적이고 보수적이었던 비대한 공룡 GE를 변모시켜 기업의 시장가치를 120억 달러에서
4,500억 달러로 끌어올린 잭 웰치는 '경영의 신'으로까지 불리운다.
그런 까닭에 그 동안 잭 웰치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그의 경영철학이나 GE 혁신 과정에
관해 쓴 책들은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은 잭 웰치가 기업경영에 대해 직접 쓴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책들과 다르게 볼 수 있다.
잭 웰치가 쓴 만큼 어머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GE에
입사한 과정, 마침내 CEO가 되어 단행한 여러 가지 개혁들이 상세하게 나와있다.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와 인생 모두에 걸쳐 승리했던 순간, 처참했던 실패의 순간들도
함께 이 책에 실려있다.
▣ 차 례
제1부 꿈을 키우던 시절
제2부 웰치식 경영의 시작
제3부 도전과 성공의 나날들
제4부 끝없는 열정의 승부
제5부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제1부 꿈을 키우던 시절
어머니가 심어준 자신감
그해 아이스하키 시즌의 마지막 게임은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우리는 여섯 경기에서
계속 패했는데 그 중 다섯 번은 단 한 골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패했다.
라이벌 베벌리 고등학교와 의 경기는 2:2의 동점을 기록하며 연장전으로 이어진
막상막하의 숨막히는 경기였다.
하지만 상대 팀은 이내 득점을 했고 우리는 결국 일곱 번째 패배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실망감 때문에 나는 하키 스틱을 경기장의 얼음판 위에 힘껏 내동댕이치고
라커룸으로 향했다. 라커룸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라커룸의 문이 열리더니
어머니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어머니는 내게 똑바로 다가와서 멱살을 잡더니 이렇게 소리쳤다. "이 바보 같은 녀석아.
만일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른다면 넌 결코 멋지게 승리하는 방법 또한 알
수가 없을 거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넌 더 이상 경기를 할 자격이 없어."
나는 친구들 앞에서 모욕을 당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한 말을 그 이후로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라커룸 안으로 들어와서 내게 당신의 열정과 에너지, 나에 대한 실망, 그리고 사랑을
남김 없이 표현한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
으로 내게 승리의 기쁨과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자세의 중요함, 그리고 경쟁의 소중함을
가르쳐주었다. 나의 기본적인 경영 신념의 많은 부분들 또한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다.
어머니가 불어넣은 통찰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는 어떠한 상황이든
정면으로 맞서야 한 다는 것을 늘 강조했다. 또 "자신을 속이지 마라.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학창 시절 초기에 어머니는 내게 성실하게 노력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주었다. 어머니는 항상 내가 숙제를 했는지 철저히 검사했고,
지금 나는 어머니가 내게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회사에서 끊임없이 업무를 점검한다.
위층 내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을 때 거실에서 들려오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아직 다 못했니? 숙제를 마칠 때까지는 내려오지 마라!"
아마도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선물은 자신감일 것이다. 그것은 내가 지금껏 추구해
왔고, 또 나와 함께 일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심어주려 했던 것이다. 자신감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다. 그것은 보다 큰 위험을 감수하게 하여 스스로 가능하다
고 생각했던 것 이상의 성취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에 도전하게 한다. 그것은 각각의 성공에 대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상해 줌으로써 생겨나게 된다.
GE에서의 힘겨운 첫걸음
1961년에 연봉이 1,000달러 오르기 전까지 나는 엔지니어로서 GE로부터 1만 5,000달러를
받고 일했다.
1,000달러라는 금액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나를 포함한 4명의 동료들을 위해 책정된
일정 금액을 균등하게 분배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나는 그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내가 표준보다 더 많이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상사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논의할 여지도 없는 문제였다. GE의 그런 비합리적인 관행에 좌절한 나는
다른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변화를 거부하는 완고하고 거대한 관료조직 밑에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능력이나 성과 등을 고려하지 않고 미리 금액을 정해
놓는 임금 인상은 내가 GE에 느꼈던 염증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GE에서 보낸 첫해는 악몽이었다. 마음에 든 점도 있었지만 나는 매일 조금씩
더 좌절하고 있었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회사의 인색한 행정은 계속되었다.
우리 팀의 네 사람은 비좁은 사무실을 나눠 쓰고, 두 대의 전화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고,
책상 너머로 서로 전화를 건네주느라 수선을 떨어야 했다.
사업차 여행을 할 때 호텔에서 다른 사람들과 방을 같이 쓰라고 요구받기도 했다.
결국 나는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돌리려 할 때
당시 젊은 이사였던 루벤 구토프는 나와 아내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구토프는 내가 느끼는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4시간이나 계속된 저녁식사를 마친 뒤에 그는 GE에서 계속 일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보다 높은 임금 인상을 약속했고,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회사의
관료주의적인 간섭을 배제시켜 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도 나와 같이
GE의 그릇된 관료주의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날 저녁 고민을 했다. 그리고 결국 GE에 남기로 결심했다.
구토프가 나를 다른 사람들 과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사실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이후로 차별화는 나의 기본적인 경영 방식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차별화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기를 떨어 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20승을 거둔 투수와 40번이 넘게 홈런을 친 타자를 어떻게 대우해 주는지 보라.
그러나 선수들의 상대적 기여도는 매우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팀의 일원인 것이다. 게임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팀원이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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