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하며]/예쁜좋은글

가시나무새의 슬픈 사랑이야기

Jackim 2007. 6. 7. 04:03

     

     

     

    가시나무새의 슬픈 사랑이야기


                              나 태 주

     

    1.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모를 것이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변방의 둘레를 돌면서
    내가 얼마나 너를 생각하고 있는가를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까마득 짐작도 못할 것이다.
    겨울 저수지의 외곽길을 돌면서
    맑은 물낯에 산을 한 채 비춰보고
    겨울 흰 구름 몇 송이 띄워보고
    볼우물 곱게 웃음 웃는 너의 얼굴 또한
    그 물낯에 비춰보기도 하다가
    이내 싱거워 돌멩이 하나 던져 깨드리고 마는
    슬픈 나의 장난을


    2.
    솔바람 소리는 그늘조차 푸른빛이다.
    솔바람 소리의 그늘에 들면 옷깃에도
    푸른 옥빛 물감이 들 것만 같다.

    사랑하는 사람아,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마음조차 그만
    포로소롬 옥빛 물감이 들고 만다면
    어찌겠느냐 어찌겠느냐.

    솔바람 소리 속에는
    자수정빛 네 눈물 비린내 스며 있다.
    솔바람 소리 속에는
    비릿한 네 속살 내음새 묻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아,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 마음조차 그만
    눈물 비린내에 스미고 만다면
    어찌겠느냐 어찌겠느냐.


    3.
    나는 지금도 네게로 가고 있다.
    마른 갈꽃내음 한 아름 가슴에 안고
    살얼음에 버려진 골목길 저만큼
    네모난 창문의 방안에 숨어서
    나를 기다리는
    빨강 치마 흰버선 속의 따스한 너의 맨발을 찾아서
    네 열게 발가락의 잘 다듬어진 발톱들 속으로.

    지금도 나는 네게로 가고 있다.
    마른 갈꽃송이 꺾어 한 아름 가슴에 안고
    처마 밑에 정갈히 내건 한 초롱
    네 처녀의 등불을 찾아서.
    네 이쁜 배꼽의 한 접시 목마름 속으로
    기뻐서 지줄대는 네 실핏줄의 노래들 속으로